침례교의 정체성, 그 역사와 기원
① 기원 — 박해가 낳은 교회
국교회 이탈 자체가 범죄이던 시대, 제임스 1세의 “몰아내겠다”는 선언(1604) 앞에서 게인즈버러 회중이 암스테르담으로 망명(1607–08). 1609년 스미스의 신자 침례, 그리고 교회의 권위가 계승이 아니라 고백에서 온다고 본 헬위스가 1612년 귀환하여 잉글랜드 본토 최초의 침례교회 설립. 일반침례교와 특수침례교는 각각 다른 뿌리에서 발생 — 단일 직선 계보로 설명 불가.
② 고백 — 믿음을 문서로 천명
갈림의 기준은 침례가 아니라 구원론. 특수침례교는 도르트의 다섯 교리를 수용해 제1차 런던 신앙고백(1644, 52개 조항)을 작성했고, 일반침례교는 보편 속죄의 길로 감. 제2차 런던 신앙고백(1677/89, 32개 장)은 관용법 통과 후 공개 발표되어, 개혁주의 교리를 공유하되 신자의 침례와 지역 교회의 자치에서 갈리는 침례교의 자리를 확정.
③ 자유 — 가장 먼저, 가장 비싸게 주장한 원리
헬위스는 왕에게 “영혼에는 권한이 없다”고 쓰고 옥사(c. 1616). 윌리엄스는 통치자의 첫째 돌판 집행 불가를 주장하다 추방되어 프로비던스 설립(1636). 배커스는 면세 증명서 제출 거부로 종교세 체제와 충돌, 수정헌법 제1조의 사상적 토대 제공. 다만 1845년 분열은 자유를 고백한 전통이 타인의 자유를 부정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