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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II - 제9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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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Lee, Ph.D.
Chang Lee,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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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7T18:17:3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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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II · CHURCH HISTORY II제 9 주차경건주의와존 웨슬리의 대각성 부흥 운동Pietism and the Wesleyan Revival주교재 셀리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제6부 (이성과 부흥의 시대)담당교수: Chang Lee, Ph.D.Global Baptist Theological Institute and Seminary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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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주차. 6주차에서 본 계몽주의의 차가운 이성과 5주차 정통주의의 경직성에 대한 응답으로서 '마음의 종교'를 다룹니다. 독일 경건주의 → 모라비아 → 웨슬리 → 대각성의 흐름입니다.1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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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강의의 흐름머리에서 마음으로교리는 정교해졌으나 신앙은 차가워졌다. 그 얼어붙은 자리에서 불이 일어난다.I 독일 경건주의슈페너·프랑케 —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과 '경건의 모임'II 모라비아 형제단친첸도르프와 헤른후트(Herrnhut) — 개신교 최초의 대규모 선교III 존 웨슬리올더스게이트의 회심 —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졌다”IV 대각성 운동휫필드·에드워즈 — 대서양을 건넌 부흥의 물결2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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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국면. 독일에서 시작해 영국으로, 다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번지는 하나의 물결입니다. 실라버스 학기말 과제 2번 주제(계몽주의의 도전과 복음주의의 응전)가 6주차+이번 주 조합입니다.2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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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소개이번 주 학습 목표 반작용의 구조경건주의가 정통주의의 경직성과 계몽주의의 합리주의 양쪽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이해한다. 마음의 종교'회심 체험'과 '거듭남(regeneration)'이 왜 이 운동의 중심어가 되었는지 파악한다. 웨슬리의 방법올더스게이트의 회심에서 감리회 조직까지, 부흥이 어떻게 지속되었는지 추적한다. 침례교와의 접점대각성이 왜 침례교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졌는지 우리 전통과 연결한다.3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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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목표. 네 번째가 침례교 신학교 맥락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 대각성 이후 침례교가 감리교와 함께 미국 최대 교단으로 성장합니다.3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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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얼어붙은 정통, 메마른 이성 경건주의는 세 가지에 대한 응답이었다 — 신학자들의 독단주의, 철학자들의 합리주의, 그리고 30년 전쟁의 참상.교리의 화석화 —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라기보다 국가교회의 '교인 자격' 문제가 되었다. 정통 목사가 집전하는 예배와 성례에 성실히 참석하는 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였다.정통주의 설교의 전제 — 하나님이 신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른 교리와 점잖은 삶뿐이라는 것. 경건주의자들은 이에 맞서 '사회가 기대하는 것'과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의 대조를 강조했다.곤잘레스의 통찰 — 이것은 안락한 교회에게 언제나 불편한 도전이었다.4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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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정통주의)와 6주차(계몽주의)를 함께 복습시키세요. 경건주의는 그 둘 사이에서 '살아 있는 신앙(living faith)'을 회복하려는 제3의 길이었습니다. 30년 전쟁의 참상이 개인적 경건에 눈뜨게 했다는 점도 짚으세요.4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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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 — 독일 경건주의 ①슈페너: 경건주의의 아버지 필립 야콥 슈페너 (Philip Jakob Spener, 1635–1705)프랑크푸르트 목사로 부임해 도시의 상태에 충격을 받고, 정해진 본문을 버리고 성경 전체를 설교하며 회개와 제자도를 촉구했다.1669년 산상수훈을 설교하자 반응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 사람들이 회심하고 가정이 변했다.자기 집에서 주 두 차례 헌신된 신자들을 모아 성경을 읽고 신앙을 나누었다. 이 모임이 조롱조로 '경건한 자들의 모임'이라 불렸고, 거기서 경건주의(Pietism)라는 이름이 태어났다. 이 모임을 그는 '경건의 모임'(collegia pietatis)이라 불렀다. 『경건한 열망』 (1675)Pia Desideria경건주의의 헌장(charter)이 된 책. 만인제사장설(universal priesthood of believers)에 근거해 평신도와 성직자의 차이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 책임을 강조했다.제안 — 성경 공부 소그룹, 엄격한 신앙생활, 신학생의 인격 훈련, 그리고 더 단순하고 영적인 설교.5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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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Philip Jakob Spener, [용어] Pietism(경건주의)·Pia Desideria(경건한 열망)·collegia pietatis(경건의 모임). 중요한 균형: 슈페너는 교회의 교리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교리가 인격적 신앙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5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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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 — 독일 경건주의 ②프랑케: 할레의 사회적 사역 회심의 순간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는 2년의 내적 갈등 끝에 회심했다.요한복음 20:31로 설교를 준비하다 무릎을 꿇고 간구했다 — 아직 알지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그 하나님께, 만일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비참한 상태에서 건져 달라고.하나님이 들으셨다. 슬픔이 떠나고 기쁨의 물결에 압도되었으며, 일어섰을 때 그는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알았다. 할레 대학 (University of Halle)경건주의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학교, 고아원, 병원, 과부의 집, 미혼 여성의 집, 진료소, 서적 보급소, 인쇄소, 성서원까지.1705년 덴마크 왕 프레데릭 4세가 인도에 개신교 최초의 선교를 시작하려 했을 때, 첫 선교사들을 찾은 곳이 바로 할레의 프랑케 제자들 가운데였다.경건주의가 개신교 선교(Protestant missions)를 낳았다 — 이것이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기여다.6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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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August Hermann Francke. 경건주의가 '내면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고 고아원·학교·병원이라는 사회적 실천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하세요. 11주차 세계 선교와 직결됩니다.6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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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I — 모라비아 형제단헤른후트: '주님의 파수대' 목수와 백작 — 후스파의 후예가 개신교 최초의 선교 부대가 되다친첸도르프 백작 (Count Nikolaus von Zinzendorf, 1700–1760)은 슈페너의 대자(代子)이자 할레에서 프랑케에게 배운 인물이다. 30년 전쟁으로 짓밟히고 박해받던 보헤미아 형제단(Unitas Fratrum)이 피난처를 구하자, 그는 자기 영지를 내주었다. 1722년 모라비아 목수 크리스티안 다비트 (Christian David)가 그곳에 헤른후트(Herrnhut, '주님의 파수대')를 세웠다. 1731 코펜하겐덴마크 왕 대관식에서 서인도제도의 흑인을 만나 노예들의 처지에 큰 충격을 받는다. 1732 첫 선교사도버와 니치만이 헤른후트를 떠나 성 토마스로 향한다. 이어 그린란드·라플란드·조지아·기니 해안·남아프리카·가이아나·실론·알제리로. 놀라운 통계200명의 피난민으로 시작한 공동체가 20년 만에, 종교개혁 이후 200년간 모든 개신교회가 파송한 것보다 더 많은 해외 선교사를 냈다.7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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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Count Nikolaus von Zinzendorf·Christian David, [용어] Herrnhut(헤른후트)·Unitas Fratrum(보헤미아 형제단). 친첸도르프의 고백을 인용하면 좋습니다 — “내게는 오직 하나의 열정이 있으니, 그것은 그분, 오직 그분뿐이다.” 후스파의 후예라는 점에서 4주차·5주차와 연결됩니다.7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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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II — 존 웨슬리 ①불에서 건진 그루터기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의 아버지 새뮤얼은 성공회 사제였고, 어머니 수산나(Susanna)는 열아홉 자녀의 신앙 교육에 각별했다.다섯 살 때 사택에 불이 났고 그는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이후 어머니는 그를 “불에서 건진 그루터기”(a brand plucked from the burning)로 여겼다 —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뜻이었다.옥스퍼드에서 동생 찰스가 만든 신앙 모임에 합류했다. 거룩하고 절제된 삶, 주 1회 이상 성찬, 사적 경건, 정기적 감옥 방문, 매일 오후 세 시간 성경과 경건서적 연구를 언약했다.동료 학생들은 이들을 '신성 클럽(Holy Club)'이라 조롱했고, 그 규칙적인(methodical) 생활 방식 때문에 '메소디스트(methodists)'라 불렀다. 조지아에서의 실패선교사로 조지아에 갔으나 목회자로서 비참하게 실패했다. 교인들이 '신성 클럽'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결국 소송에 휘말려 혼란과 쓰라림 속에 귀국했다.그러나 한 가지 긍정적 경험이 있었다 — 항해 중 폭풍 속에서도 평온히 찬송하던 모라비아 교도들과의 만남이었다.8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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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John Wesley·Susanna Wesley·Charles Wesley, [용어] Holy Club(신성 클럽)·methodists(메소디스트)·a brand plucked from the burning(불에서 건진 그루터기). 웨슬리가 '실패한 선교사'였다는 점을 강조하세요 — 열심과 도덕적 진지함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8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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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II — 존 웨슬리 ②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 (Aldersgate) 페터 뵐러의 조언모라비아 전도자 페터 뵐러 (Peter Boehler)는 웨슬리에게 새로운 탄생, 곧 죄를 이기고 참된 거룩에 이르게 하는 인격적 믿음이 필요하다고 일깨웠다.“이신칭의는 단지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웨슬리가 믿음이 없으니 설교를 그만두어야겠다고 하자, 뵐러는 답했다 — “믿음을 얻을 때까지 믿음을 설교하십시오. 그리고 얻거든, 얻었기에 설교하십시오.”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졌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저녁에 나는 매우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모임에 갔다. 누군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아홉 시 십오 분 전쯤,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묘사할 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분이 내 죄를, 바로 나의 죄를 없이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주어졌다.9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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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Peter Boehler, [용어] Aldersgate(올더스게이트). 이 슬라이드가 강의의 정서적 정점입니다. 인용문을 천천히 읽어 주세요. 핵심 통찰: 웨슬리는 이미 이신칭의 '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올더스게이트에서 얻은 것은 '확신(assurance)'이었습니다 — 2주차 루터의 탑의 체험과 대비하면 좋습니다.9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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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II — 존 웨슬리 ③들판으로: 부흥이 시작되다 에드워즈의 글이 불씨가 되고, 휫필드의 초청이 문을 열었다.런던에서 옥스퍼드로 걸어가던 중, 웨슬리는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노샘프턴의 회심을 기록한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뉴잉글랜드의 대각성이 영국의 부흥에 직접 영향을 준 순간이다.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는 1739년 2월 브리스톨 근교 탄광에서 야외 설교를 시작했다. 교회에 감히 들어오지 못하던 광부들이 울었고, 검은 뺨 위로 “눈물이 만든 흰 고랑”이 보였다.휫필드가 웨슬리를 불렀다. 웨슬리는 주저했다 — “품위와 질서에 관한 모든 것에 그토록 집착해 온 나로서는,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면 영혼을 구원하는 일조차 죄에 가깝다고 여겼을 것이다.”동생 찰스의 반대에도 그는 순교자 같은 심정으로 브리스톨에 갔고, 야외에서 3,000명이 넘는 이들에게 설교했다. 회심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감리교 부흥이 시작된 것이다.10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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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Jonathan Edwards·George Whitefield. 웨슬리의 변화가 극적입니다 — 올더스게이트 이전에는 불안과 무력감에 차 있었으나, 브리스톨 이후에는 '하나님을 위한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뵐러의 조언이 성취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10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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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II — 존 웨슬리 ④감리교의 방법: 부흥을 지속시키다 행정의 천재휫필드는 조직에 취미가 없었으나 웨슬리는 행정의 천재였다. 감리회(Methodist societies)가 잉글랜드·아일랜드·웨일스 전역에 세워졌다.이들은 아직 오늘날의 '교회'가 아니었다. 대부분 성공회 교인이었고, 웨슬리는 예배와 성찬은 본 교구 교회에서 하라고 권했다.그러나 신자들은 감리회 안에서 서로에게 죄와 부족함을 고백하고, 지도자의 권징과 인도를 받으며,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는 데서 신앙 체험의 중심을 찾았다. 속회 (classes) — 모라비아의 본을 따라웨슬리는 감리회를 12명 안팎의 작은 모임으로 나누었다. 라틴어 classis('나눔')에서 온 말로, 학교와는 무관하다.처음에는 주당 1페니의 재정 후원을 독려하려는 용도였으나, 곧 영적 성장과 상호 책임의 핵심 구조가 되었다.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는 7,000편이 넘는 찬송을 지었다. 일부 역사가는 그의 찬송이 이 부흥의 가장 큰 유산이라고 본다.11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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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Charles Wesley, [용어] Methodist societies(감리회)·classes(속회)·classis. 핵심 교훈: 부흥은 감정만으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웨슬리의 조직이 휫필드의 웅변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5주차 슈페너의 '경건의 모임'과 같은 구조임을 연결하세요.11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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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쟁점예정인가, 자유의지인가대각성의 지도자 가운데 웨슬리만이 아르미니우스주의(Arminianism)를 주장했다. 웨슬리 (Wesley) — 아르미니우스주의칼뱅의 예정 교리에 단호히 반대했다.그 믿음이 하나님을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분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무관심한 분으로 보이게 한다고 여겼다.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시며, 사람에게는 은혜를 택하거나 거부할 만큼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휫필드 (Whitefield) — 칼뱅주의예정 교리를 옹호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권위를 부각하기 때문이다.웨슬리의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죄의 깊이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핵심 개념을 훼손한다고 보았다.결과 — 감리교는 웨슬리를 따르는 아르미니우스파와 휫필드를 따르는 칼뱅파 두 진영으로 갈렸다.두 사람 모두 부흥을 위해 일했기에 서로 존중하며 다르기로 합의했다. 1770년 휫필드의 장례 설교에서 웨슬리는 그의 “더없이 관대하고 따뜻했던 우정”을 말했다.12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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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Arminianism(아르미니우스주의). 5주차 도르트 회의에서 예고한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여기서 감리교로 이어집니다. 신학적 차이에도 협력한 두 사람의 태도가 학생들에게 좋은 모범입니다.12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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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V — 대각성 운동 ①아메리카의 대각성 (Great Awakening) 노샘프턴에서 시작된 바람매사추세츠 노샘프턴에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신앙의 극심한 둔감함”을 겪는 200가정을 목회하고 있었다.1734년 12월, “하나님의 영이 특별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썼다 — 마을에서 노소를 막론하고 영원한 세계의 큰 일에 무관심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회심의 역사가 놀랍게 진행되어 영혼들이 떼를 지어 그리스도께 나아왔다.1739년 휫필드가 아메리카로 건너와 조지아·캐롤라이나·버지니아·메릴랜드·펜실베이니아·뉴욕을 순회 설교했다. 지역적 미풍이던 부흥이 '영적 허리케인'으로 바뀌었다. 오해를 바로잡기반대자들은 이 운동이 예배의 엄숙함을 훼손하고 연구와 경건 대신 감정을 앞세운다고 비난했다.그러나 지도자 다수는 감정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학자였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감정적 열변이 아니라 깊은 신학적 주제를 정교하게 풀어낸 강해였다.에드워즈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보았으나, 그것이 바른 교리와 이성적 예배의 필요를 가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13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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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Jonathan Edwards, [용어] Great Awakening(대각성). 오른쪽 카드가 중요합니다 — 대각성을 '감정주의'로 단순화하지 않도록. 에드워즈는 미국 최고의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13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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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IV — 대각성 운동 ② ★누가 가장 크게 자랐는가 초기에는 회중교와 장로교가 주도했으나, 길게 보면 가장 큰 유익을 얻은 것은 침례교와 감리교였다.처음에 침례교인들은 이 운동을 경박하고 피상적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대각성은 많은 이들을 침례교에 유리한 결론으로 이끌었다 — 회심 체험을 강조할수록, 태어나면서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결단으로 교회에 들어간다는 침례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신자의 교회와 만나다대각성의 회심 강조는 5주차에서 본 '거듭난 자들의 공동체(regenerate membership)'라는 침례교 교회론과 정확히 맞물렸다. 변방의 강점슈발 스턴스(Shubal Stearns) 같은 열정적 설교자들 아래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에서 침례교가 급증했다. 절반 언약의 해답5주차의 '절반 언약(Half-way covenant)' 딜레마 — 회심 없는 세례교인 문제 — 에 대해, 회심 후 세례라는 침례교식 해법이 재조명되었다.14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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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례교 신학교에서 특히 중요한 슬라이드. 7주차 특강의 '변방의 강점'과 5주차 '절반 언약'을 여기서 회수합니다. 19세기 중반 침례교와 감리교가 미국 최대 개신교단이 되는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 12주차로 이어집니다.14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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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3! ! ppt/slides/slide15.xml
종합 ①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이렇게 태어났다 감리교 부흥은 감리교단의 기원만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주의 기독교'라 부르는 운동의 뿌리를 밝혀 준다.두 줄기 — 웨슬리와 함께 조지아로 항해하던 모라비아 교도들이 한 날개(경건주의)이고, 본류는 영국과 그 식민지에서 왔다.1730년대에 아메리카·스코틀랜드·웨일스·잉글랜드에서 회심하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사도적 열정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 에드워즈, 어스킨 형제, 하웰 해리스, 휫필드가 모두 웨슬리보다 앞섰다.청교도와의 연속과 차이 — 기본 신념(인간의 죄, 그리스도의 속죄, 값없는 은혜, 참 신자의 구원)은 청교도에게서 왔다. 그러나 청교도는 '거룩한 연방'을 세우는 정치에 더 관심이 있었던 반면,복음주의자들을 지배한 열정은 '잃은 자를 회심시키는 것'이었다. 교회의 개혁보다 모든 사람 — 명목상 그리스도인, 조롱하는 자, 이교도 — 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15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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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 ppt/notesSlides/notesSlide15.xml
[용어] evangelicalism(복음주의). 우리 자신의 신앙 유형이 어디서 왔는지 보여 주는 슬라이드입니다. 5주차 청교도와의 연속·차이를 반드시 짚으세요 — 오늘 세계 감리교인이 약 8천만 명입니다.15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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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②경건주의와 부흥이 남긴 것 1교리 논쟁에서 영혼 돌봄으로18세기 교회의 강조점을 격렬한 교리·정치 논쟁에서 영혼의 돌봄으로 옮겼다. 설교와 심방이 목회의 중심 관심사가 되었다. 2소그룹과 성경 묵상가장 큰 유산은 소그룹과 경건한 성경 읽기였다. 개인 성경이 그 어느 때보다 보급되었고, 짧은 본문 묵상과 잘 고른 찬송이 결합되었다. 3평신도와 찬송각성된 평신도가 부흥한 교회의 필수 요소임을 부각했고, 기독교 음악을 크게 풍요롭게 했다. 4개신교 선교의 탄생종교개혁자들이 소홀히 했던 비기독교 세계를 향한 선교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 11주차 '위대한 세기'의 뿌리.이 모두를 떠받친 주제는 하나 — 거듭남(regeneration). 그것은 신학적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체험이었다.16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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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regeneration(거듭남). 하단 문장이 이 운동의 핵심 요약입니다. 4번 항목은 11주차로 가는 다리입니다.16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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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적용뜨거운 마음과 바른 머리 경계해야 할 것체험의 절대화 — 곤잘레스의 지적대로, 초기 경건주의는 '살아 있는 인격적 신앙'을 강조했을 뿐, 특정한 체험의 방식이나 시점을 요구하지 않았다.친첸도르프 주변에 자란 인물 숭배를 웨슬리는 예리하게 간파했다 — “모든 것이 백작 아닌가?”감정만 남고 조직과 교리가 없으면 부흥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한다. 이어받아야 할 것교리는 인격적 신앙을 대신할 수 없다 — 슈페너의 통찰은 오늘 신학교에도 유효하다.경건은 내면에 머물지 않는다 — 프랑케의 고아원과 학교, 모라비아의 선교가 그 증거다.소그룹과 상호 책임 — 웨슬리의 속회는 오늘 우리 교회의 구역·목장·소그룹의 원형이다.신학적으로 달라도 협력할 수 있다 — 웨슬리와 휫필드가 보여 준 모범.17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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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6주차 계몽주의의 '차가운 머리'와 이번 주 '뜨거운 마음'을 대비시키되,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균형을 강조하세요. 웨슬리 자신이 옥스퍼드 학자였다는 점도 좋은 예입니다.17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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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학습 활동핵심 정리와 이번 주 과제핵심 정리경건주의(Pietism)는 정통주의의 경직성과 계몽주의의 합리주의 양쪽에 대한 응답이었다.슈페너의 『경건한 열망』과 프랑케의 할레 사역, 친첸도르프의 헤른후트가 개신교 선교를 낳았다.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에서 확신을 얻었고, 속회(classes) 조직으로 부흥을 지속시켰다.대각성은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낳았고, 침례교와 감리교가 가장 크게 성장했다.독서 과제셀리 제6부(경건주의·웨슬리·대각성 관련 장) · (참고) 곤잘레스 『현대교회사』 경건주의 편토론 주제 오늘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뜨거운 마음'과 '바른 머리' 중 어느 쪽이 약한가? 경건주의와 웨슬리의 방법에서 배울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시오.다음 주 예고 — 제10주차: 프랑스 혁명과 19세기 유럽 기독교의 변화 (제7부 진보의 시대)18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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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과제·예고. 10주차부터 제7부(진보의 시대)로 넘어갑니다.18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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