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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II - 제14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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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Lee, Ph.D.
Chang Lee,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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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9T21:31:44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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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II · CHURCH HISTORY II제 14 주차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와에큐메니컬 운동Karl Barth's Neo-orthodoxy and the Ecumenical Movement주교재 셀리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제8부 (이데올로기 시대)담당교수: Chang Lee, Ph.D.Global Baptist Theological Institute and Seminary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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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주차. 13주차에서 예고한 '자유주의 낙관의 붕괴'에서 시작합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태어난 신학과, 그 신학이 나치에 맞선 이야기, 그리고 선교에서 시작된 일치 운동을 다룹니다.1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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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강의의 흐름폐허에서 다시 시작하다1914년 전쟁이 자유주의의 낙관을 무너뜨렸다. 그 폐허에서 두 가지가 자라났다 — 새로운 신학과 새로운 일치.I 한 목사의 전환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 전적 타자(Wholly Other)II 신정통주의위기의 신학 · 『교회 교의학』 · 니버 형제III 신앙고백교회바르멘 선언 (Barmen Declaration) · 본회퍼IV 에큐메니컬 운동에든버러에서 WCC로 · 로잔 언약 · 제2차 바티칸2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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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국면. 신학의 전환(I·II)과 그 신학이 시험받는 자리(III), 그리고 일치 운동(IV)입니다. 실라버스 학기말 과제 4번 주제가 13주차와 이번 주 조합입니다.2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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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소개이번 주 학습 목표 전환의 계기바르트가 왜 자기 스승들의 자유주의를 버렸는지, 그 개인적·역사적 계기를 이해한다. 신정통주의의 핵심'전적 타자'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두 축이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한다. 신학이 시험받을 때바르멘 선언과 본회퍼를 통해 신학과 정치의 관계를 성찰한다. 일치의 두 길WCC와 로잔 언약, 두 흐름을 비교하고 복음주의의 자리를 규명한다.3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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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목표. 네 번째가 우리 전통의 자리를 묻는 대목입니다 — WCC와 로잔을 균형 있게 다룹니다.3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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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 — 한 목사의 전환 ①자펜빌의 목사, 신학을 버리다 칼 바르트 (Karl Barth, 1886–1968)는 스위스 자펜빌의 시골 목사였다.그는 교구의 사회 문제에 깊이 관여해 설교와 강의를 준비할 때만 신학을 읽을 정도였고, 1915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했다. 이 운동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도구라고 여겼다.그러나 전쟁이 그의 정치적 희망과 신학을 함께 부수었다. 사회민주당이 약속한 새 세계는 오지 않았고, 자유주의 스승들의 낙관은 전쟁으로 찢긴 유럽에 어울리지 않았다.1916년 친구 투르나이젠 (Eduard Thurneysen)과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다른 기초 위에서 신학을 해야 하며, 그 최선의 길이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다음 날 아침 바르트는 로마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것이 신학계를 뒤흔들게 된다.4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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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Karl Barth·Eduard Thurneysen. 바르트가 학자가 아니라 '시골 목사'였다는 점, 그리고 사회 참여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짚으세요. 13주차에서 본 자유주의의 낙관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한 사람의 경험으로 보여 줍니다.4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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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 — 한 목사의 전환 ②『로마서 주석』: 전적 타자(Wholly Other)이신 하나님Commentary on Romans (1919 · 1922) 초판 (1919)원래 자기 자신과 소수의 친구들을 위해 쓴 것이었다.그는 체계적 구성이 아니라 신실한 주해로 돌아갈 필요를 역설했다.성경의 하나님은 초월하시며 결코 인간이 조종할 대상이 아니고,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도 우리가 소유하는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거듭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선언했다. 제2판 (1922) — 더 멀리 나아가다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타자성(otherness)'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초월을 말했으나, 인간 본성의 가장 좋은 것에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자유주의적·낭만주의적 경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두려워했다.이제 그는 하나님 나라가 종말론적 실재이며, 전적 타자(Wholly Other)로부터 오는 것이지 인간의 건설이 아니라고 확신했다.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의 영향이 뚜렷하다 — 시간과 영원, 인간의 성취와 하나님의 행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격에 대한 강조에서.5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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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Søren Kierkegaard, [용어] Wholly Other(전적 타자)·Commentary on Romans(로마서 주석). 핵심 전환: 하나님을 '인간 안의 최선'에서 찾던 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여전히 사회주의자였으나, 어떤 인간의 기획도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5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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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I — 신정통주의 ①위기의 신학, 말씀의 신학 이 신학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 변증법적 신학(dialectical theology), 위기의 신학(crisis theology), 그리고 신정통주의(neo-orthodoxy).결코 우리의 것이 되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 맞은편에 서 계시는 하나님, 그 말씀이 동시에 '예'이면서 '아니오'인 하나님, 그 임재가 우리의 노력에 안도와 영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신학이었다. 동료들개혁파 에밀 브루너 (Emil Brunner), 루터파 목사 고가르텐 (Friedrich Gogarten), 신약학자 불트만 (Rudolf Bultmann)이 모여들었다. 학술지1922년 바르트·고가르텐·투르나이젠 등이 『시대들 사이에서』(Zwischen den Zeiten)를 창간했다. 결별불트만과 고가르텐은 너무 전통적이라며 떠났고, 브루너와 바르트는 자연과 은혜 문제로 갈라섰다 — 브루너는 은혜가 작용할 '접촉점'이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바르트는 은혜가 스스로 접촉점을 만든다고 했다.6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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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mil Brunner·Friedrich Gogarten·Rudolf Bultmann, [용어] dialectical theology(변증법적 신학)·crisis theology(위기의 신학)·neo-orthodoxy(신정통주의)·Zwischen den Zeiten(시대들 사이에서). 브루너와의 논쟁('접촉점')은 자연신학 문제로, 오늘 변증학과도 연결됩니다.6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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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I — 신정통주의 ②『교회 교의학』: 20세기의 기념비 1927년 그는 『기독교 교의학』 제1권을 내며, 신학의 대상은 슐라이어마허 등이 보이게 한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선언했다.그러나 이 기획 전체가 잘못된 출발이 되었다. 안셀무스 연구와 19세기 개신교 신학 연구를 거치며, 그는 『기독교 교의학』이 철학에 너무 많은 것을 내주었다고 확신했다.새로운 통찰 — 하나님의 말씀은 답만이 아니라 질문도 준다. 예컨대 죄는 우리가 본성으로 아는 무엇이고 복음이 거기 응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죄로 깨우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모르면 은혜도 죄도 알지 못한다.그리하여 그는 신학의 교회적 기초를 강조하는 제목으로 다시 시작했다 —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 13권이 1932년부터 1967년까지 출간되었고,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곤잘레스의 평가『교회 교의학』은 의심할 여지 없이 20세기 신학의 위대한 기념비다.신학 체계가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여기던 때에, 그는 신학 학문의 최전성기에 값하는 작품을 썼다. 40년 가까이 쓰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다.가장 주목할 점은 신학 전체 과업에 대한 그 자신의 자유와 비판적 태도다. 그는 신학을 결코 하나님의 말씀과 혼동하지 않았다 — 신학은 아무리 참되고 옳아도 언제나 인간의 노력이므로, 자유와 기쁨과 심지어 유머를 가지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7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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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the Word of God(하나님의 말씀)·Church Dogmatics(교회 교의학). 마지막 문장이 신학생들에게 특히 좋은 교훈입니다 —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므로 겸손과 유머가 필요합니다.7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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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II — 신앙고백교회 ①신학이 시험받다: 독일 그리스도인 바르트가 『교회 교의학』 제1권을 준비하던 때, 독일에서는 불길한 일이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개신교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이 새로운 도전에 비판적으로 응답할 신학적 도구가 없었다. 그들 다수가 인류의 완전 가능성을 믿는다고 선언했는데, 히틀러가 선포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그들은 복음을 독일 문화와 혼동하는 경향이 있었고, 독일이 세계를 문명화하도록 부름받았다는 나치의 주장이 많은 개신교 강단과 교수직에서 메아리쳤다.이렇게 '독일 그리스도인(German Christians)'이 등장했다 — 대개 자유주의가 재해석한 전통적 기독교 신념에 인종적 우월성과 독일 민족주의를 결합한 것이다. 그들의 강령에는 기독교를 유대교에 대한 반대로 재해석하는 것이 포함되어, 제국의 반유대 정책에 기여했다.1933년 정부의 지시에 따라 통합 독일복음교회가 형성되었고, 순종하지 않는 감독은 폐위되었다.8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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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German Christians(독일 그리스도인). 신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무거운 교훈입니다 — 나쁜 신학은 학문적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13주차 자유주의의 낙관이 여기서 어떻게 무장 해제되었는지 연결하세요.8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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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II — 신앙고백교회 ②바르멘 선언 (1934) 1934년 바르트와 불트만을 포함한 여러 신학 교수가 통합 교회의 방향에 항의하는 서명을 했다.며칠 뒤 독일 전역의 루터파와 개혁파 지도자들이 바르멘에 모여 '고백하는 총회'를 열고 바르멘 선언 (Barmen Declaration)을 발표했다. 이것이 신앙고백교회 (Confessing Church)의 기초 문서가 되었다.선언의 핵심 — “교회가 그 선포의 근거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외에 또 그와 별개로, 다른 사건과 권세와 인물과 진리를 마치 하나님의 계시인 양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짓 교리”를 배격한다.대부분 바르트가 썼다. 선언은 독일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 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시험하고, 그 말씀에 부합할 때에만 받아들이라고 요청했다. 대가베를린 목사 마르틴 니묄러 (Martin Niemöller)는 체포되어 8년간 감옥에 있었다.1935년 한 해에만 신앙고백교회 목사 700명이 체포되었다. 정부를 비판한 거의 모든 목사가 징집되어 전선으로 보내졌다.모든 대학 교수에게 제국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서약이 요구되었다. 바르트는 서명을 거부하고 스위스로 돌아가 은퇴할 때까지 바젤에서 가르쳤다.9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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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Martin Niemöller, [용어] Barmen Declaration(바르멘 선언)·Confessing Church(신앙고백교회). 정직한 서술도 필요합니다 — 신앙고백교회는 나치 저항 운동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주로 독일 그리스도인의 이단적 왜곡에 맞선 것이었고, 지도자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듭 확인하기도 했습니다.9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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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II — 신앙고백교회 ③본회퍼: 값비싼 은혜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히틀러 정권 아래 고난받은 이들 중 가장 주목할 인물이다. 런던에서 목회하던 중 신앙고백교회의 초청을 받아 독일로 돌아와 비밀 신학교를 이끌었다.『나를 따르라』(The Cost of Discipleship, 1937)와 『신도의 공동생활』(Life Together, 1939)을 썼다.'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의 구별은 2주차 루터의 이신칭의를 20세기에 다시 물은 것이다 — 회개 없는 용서, 제자도 없는 은혜에 대한 경고였다. 가톨릭의 목소리1937년 5월 14일 비오 11세가 회칙 『깊은 근심으로』(Mit brennender Sorge)를 작성했다. 나치즘을 비판한 최초의 주요 교회 문서였다.독일로 밀반입되어, 단 한 부도 나치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종려주일에 모든 가톨릭 강단에서 낭독되었다.이 회칙은 교회에 대한 억압에 항의하고, 인종과 국가에 대한 우상숭배적 숭배에 저항하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충성을 지키라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호소했다.10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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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Dietrich Bonhoeffer·Pius XI, [용어] The Cost of Discipleship(나를 따르라)·Mit brennender Sorge(깊은 근심으로). 본회퍼는 1945년 처형되었습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각기 저항한 사실을 함께 다루면 15주차 에큐메니컬 논의와 이어집니다.10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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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 II — 미국의 반향니버 형제: 대공황이 낳은 신학 바르트의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이 대공황 직전 영어로 출간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바르트 세대에 미친 것과 같은 충격을 대공황으로 겪던 미국인들에게 뜻이 통하기 시작했다. H. 리처드 니버 (H. Richard Niebuhr, 1894–1962)1929년 『교파주의의 사회적 원천』에서 미국의 교파주의가 복음을 사회의 인종·사회경제적 계층에 적응시킨 것이라고 논했다.1937년 『미국의 하나님 나라』의 유명한 문장 — “진노 없는 하나님이 죄 없는 인간을,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심판 없는 나라로 데려왔다.”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 1892–1970)디트로이트의 목회자였다가,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파괴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에서, 어떤 사회든 방치하면 그 구성원의 총합보다 도덕적으로 나쁘고 더 이기적이라고 주장했다. 뒤에 그는 제목을 '비도덕적 인간과 더욱 비도덕적인 사회'로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11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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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H. Richard Niebuhr·Reinhold Niebuhr·Paul Tillich, [용어]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 — 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은혜에 대한 근본적 시각 — 을 회복할 때라고 했습니다.11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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